상담후기
내가 외국인에게 가장 알리고 싶은 한국문화는 무교(巫敎)의 굿이다.
예부터 한민족은 신기(神氣)가 강하고 신명(神命)나게 살아왔다. 신명은 한국인의 대표적인 긍정적 정서로서 한국문화와 한국 사람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져 왔다. ‘신명난다’ ‘신바람난다’ 등은 한국인들이 어떠한 일에 특히 신나게 빠져들거나 즐겁게 어떤 일을 할 때, 단기적으로 삶에 만족하고 있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신바람나게 산다’는 식으로 사용되면 사는 것이 즐거울 정도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어떤 어려움도 거뜬히 극복할 수 있는 역동적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신명의 정서는 주변사람들에게 빠르게 전달되는데 굿판에서 발견된다. 한국인들은 내면에 무교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무교, 혹은 굿의 핵심 개념을 실현하고 살아왔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 굿이 국가무형문화재와 지방자치단체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시작하면서 무교의 종교적 가치를 인정받기 전에 예술적 가치를 먼저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굿에는 은산 별신제, 강릉 단오제, 하회 별신굿 탈놀이, 양주 소놀이굿, 제주 칠머리당굿, 진도 씻김굿, 동해안 별신굿,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위도 띠뱃놀이, 남해안 별신굿,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경기도 도당굿, 서울새남굿 등이 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된 굿 외에도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굿에는 남이장군 사당제, 밤섬 도당굿, 봉화산 도당굿, 애기씨당굿 등이 있다. 국내 지방마다 색다른 무교 문화에서 태동된 굿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굿판에서 신명나게 웃고 울며 스트레스를 풀고 한마음이 되어 논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볼 것은 굿과 관련되어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무형유산이 몇 개 있다는 사실이다. 강릉 단오제가 2005년 등재됐고, 2009년에 제주 칠머리당굿이 등재되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안동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하회별신굿도 세계무형유산에 포함됐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또한 판소리가 2003년에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판소리의 근본이 굿판에서 기인됐다는 것을 부정하는 한국인은 없다. 남도 굿판에서 여흥으로 부르던 것이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인 음악인 판소리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세계무형유산 가운데 무교와 관련된 것이 3~4개나 되는 셈인데,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 민속문화의 뿌리가 무교라는 것이고 굿은 한국인의 실생활과 문화예술에 그 어느 것보다 가깝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104호로 지정된 서울새남굿의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새남굿은 서울 지역에서 행해진 망자를 천도하는 굿이다. 새남굿에는 불교의 저승관과 유교의 망자의례 요소가 잘 수용되어 있는데 굿거리의 수가 많고 정교하며 치밀한 구성과 화려함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궁중문화 요소가 굿의 복식, 음악, 춤 등에 두루 표현된다. 불교, 도교의 외래 저승관이 새남굿 속에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남굿은 한민족의 심상세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새남굿의 주연은 무당인데 망자의 넋을 본향 연꽃밭으로 천도한다. 서울새남굿은 매년 정기공연을 하고, 찾아가는 무형문화재 행사로 전국순회공연도 수시로 진행하는데 서울새남굿 공연장은 축제의 한마당이 되고 있다.
나는 작년 가을 충북 제천시에서 서울새남굿 공연을 했었는데 화려한 무복을 입고 나오자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부탁하여 공연시간이 연기되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미신이라고 천시하던 사람들도 굿판에 들어오기만 하면 저절로 춤을 추며 함께 어울려 신명나게 놀게 되니 한국인들은 머리로는 무교를 부정하지만 몸으로는 무교와 굿을 인정하는 꼴인데 한국문화의 뿌리인 굿을 어떻게 무시하고 살 수 있겠는가.
굿에는 한국인의 한이 서려있고 신명이 깃들어져 있는 양면성을 띠고 있고 한국문화의 결정판이기에 서울새남굿 전수자인 나는 외국인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다. 한민족이 신기가 강하고 신명을 즐기는 문화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국내에는 수많은 굿판이 존재하고 굿과 관련된 문화가 창출되었다. 굿은 두세명의 악사와 창을 하는 무당, 장구와 제금을 다루는 사람으로 구성되는데 한국 국악에서 다루는 굿거리 장단은 굿에서 유래됐다.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면서 저절로 흥에 겨워 어깨춤이 나오게 하는 우리의 문화가 굿이며 화려한 한국의 복식문화가 발현된 것이 굿이다.
작년 봄, 내가 인왕산 국사당에서 서울새남굿을 공연할 때 서울시 관광을 하러 온 영국의 수지 그랜트(Suzie Grant) 여사를 만났고,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방한한 민속학자도 만난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서울새남굿의 화려한 공연을 보고 자리를 즉시 뜨지 않고 한시간 넘게 굿을 참관하였다. 특히 화려한 무복과 대금, 해금, 피리와 어우러진 무당의 창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신명이 저절로 나는 굿판 분위기에 심취된 외국인들은 난생 처음 보는 굿판에서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함께 참석한 한국인들을 따라 어깨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그때 굿판의 분위기를 보면서 나는 한국인으로서 외국인에게 보여줄 한국문화는 굿이며,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작년 10월18일부터 3일간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무당들이 주인공이 되어 굿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후에도 서울 도처에서 굿을 소재로 한 굿판이 수차례 이어졌는데 유료 공연인데도 시민들이 티켓을 구매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굿 페스티벌을 내국인들만 보게 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 광광객들에게도 홍보했더라면 한국문화를 알리는데 도움이 됐을 뿐더러 관광수익도 기대할 수 있었겠다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주에 소재한 국립무형유산원(www.nihc.go.kr)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공연 행사 일정이 있긴 하지만 굿을 알리는 독립된 인터넷 공간이 아닐 뿐더러 외국인을 위한 소개보다는 내국인을 위한 안내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훌륭한 한국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굿을 외국인들에게 알리지 못해서 못보고 귀국한다는 사실이 나만의 욕심일까. 외국관광객들이 한국에 오면 볼거리가 많지 않다고 불평불만이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한국의 굿판을 보게 해준다면 관광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문화의 결정체인 한국 무교의 굿을 외국인들에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무엇보다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대한경신연합회(국내 무당들의 사단법인), 여행사 간 통합정보공유망을 구축하고 굿 공연 일정을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나 여행사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공유하도록 하여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홍보할 수 있겠다. 광광홍보책자에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면서 더불어 전통문화 구현의 장으로서 굿판을 소개하면 좋겠다. 여행사들을 통해 언제 어디서 굿판이 벌어지는지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기만 해도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국에는 없지만 한국에는 있어서 보고 경험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인 굿판을 보여주면 관광상품의 질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대만을 여행하면서 발견한 공통점은 종교문화시설을 관광명소로 지정하고 광광상품으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대형 도교사원, 일본의 신토(神道)와 신사(神寺), 베트남 다낭에서 보았던 대형 사찰, 대만과 태국의 불교 사원은 각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종교문화시설이었는데 관광객들을 유치하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전통문화유산으로써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한국문화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무교의 대형무당사원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무교를 국가 종교형태로 인정하지도 않기에 관광자원으로 상품화할 상황도 안되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반영하여 대형무당사원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수시로 굿판을 벌이며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의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국사당을 확장 개축하거나 경북궁 근처 북촌 한옥마을에 대형무당사원을 신축해 무교와 굿판을 외국인에게 알린다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NAVER카페 "무교와 연화암" 의 연화암선생님 컬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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