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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인의 근본신앙 무교의 뿌리 기행 - 인왕산 국사당

작성자
총무
작성일
2017.12.01
첨부파일0
추천수
11
조회수
1235
내용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에는 국사당이라는 굿당이 있다.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산 위로 걸어서 20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인왕산에 굿당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듯 한국인들은 무교라는 종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국사당에 가보면 뜻밖에도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용한무당, 사주잘보는곳으로 유명한 연화암선생(www.0688life.com)이 공연한 날, 영국 관광객 Suzie grant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국사당을 방문해보면 한국 무교의 본산 굿당이라는 곳이 이렇게 규모가 작고 남루하다는 느낌이 들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근본신앙을을 져버리고 살았다. 그러나 이 건물 안에는 좋은 무신도가 많다. 이 그림들은 중요민속자료 17호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그런데 이 굿당은 굿이 없을 때는 닫혀 있어 평소에는 이 그림들을 볼 수 없다. 굿을 하는 날은 사당 안을 볼 수 있지만 남의 종교 의례를 하는 데에 들어가 볼 수 없으니 안타깝다


  굿당은 전국적으로 대단히 많다. 이것은 무업에 종사하는 무당이 수십만에 달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굿당’이라고 치면 굿당과 관련된 홈페이지도 있고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굿당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서울에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수십 개의 굿당이 있었는데 이른바 ‘조국근대화’ 사업과 맞물려 시작된 ‘미신 퇴치운동’의 결과로 굿당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됐다. 이 굿당들의 역사를 보면 우리 민속이 그 동안 얼마나 천시를 받아왔는지 알 수 있다.
 

  우선 국사당을 보면, 지금의 인왕산 자리는 원래 자리가 아니었다. 국사당이 원래는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다. 지금도 팔각정 자리에 가면 국사당 자리 표지석이 있다. 1920년대 초에 일제는 남산 중턱에 조선의 모든 신사를 대표하는 “조선신궁”을 지었다. 이 신궁에는 그들의 최고신인 아마테라스 오카미를 모셨다. 그런데 남산 꼭대기에 조선 신을 모신 국사당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일제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었고 일제는 1925년에 이 국사당을 강제로 인왕산으로 옮겼다. 원래 이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가 14세기 말에 남산 신인 목멱대왕을 모시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우리나라 굿당들은 대부분 이런 신세를 면치 못한다. 3호선 무악재역이 있는 큰 길 변에 사신당이라는 굿당이 있었다. 이 굿당도 조선조에 유명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사신들이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신들이 이 굿당에 신고하지 않으면 말들의 발이 안 떨어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이름이 사신당이 되었다. 그런데 이 당은 1960년대에 도로 확장공사로 헐리면서 계속 옮겨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구파발에까지 밀려났는데 마침 은평 뉴타운이 개발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굿당에 있는 무신도(문화재자료 제27호)들이 참으로 좋았는데 지금 그 행방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본신앙 무교는 이렇게 자꾸 약해지고 사라져갔다.
 

  그런데 우리 민속이 이렇게 사라져만 갔던 것은 아니다. 가령 마포 부군당굿(서울시 무형문화재 35호)은 사라질 뻔했던 것이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 굿은 원래 한강에 있던 밤섬의 주민들이 하던 마을굿이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도시계획 차 밤섬을 폭파해 주민들이 모두 강제로 육지로 나오게 됐다. 그러나 주민들은 굿당(부군당)을 신촌 로터리 부근으로 옮겨와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굿을 하고 있다.

   매년 정월 초이튿날에 부군당굿이 열리는데 이 날만 되면 흩어졌던 마을 주민들이 다시 모여 하루 종일 굿을 즐기는 모습이 정겹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주민들이 모두 고령이라 앞으로 이 굿이 어떻게 이어갈지 걱정이다.


  이렇게 계속 줄던 굿당들은 한국의 경제가 부강해지면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원래 어떤 나라든 잘 살게 되면 이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국의 전통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서울 경기지역 굿당만 다시 수십 개로 늘어났다. 북한산이나 국민대 옆, 세검정 등 많은 곳에 굿당이 있다. 그런데 굿당들이 아주 후미진 곳에 있기 때문에 굿당을 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교통은 나쁘지 않는데 찾기는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다. 이것은 거개의 국민들이 무교를 미신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대한민국과 같이 민속 신앙을 이렇게 미신으로 매도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일본의 경우 일본의 무교는 신도(神道)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누구도 그것을 미신이라고 매도하지 않는다. 아니,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 같은 사람은 ‘물위의 신사’와 같은 작품을 설계해 신사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그런데 우리는 멀쩡한 민속 신앙을 감춰놓고 발전시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무교는 중국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장 한국적인 신앙이다. 한국인의 근본신앙인 무교를 발전시키고 말고는 이제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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